“Nature has given men one tongue and two ears, that we may hear twice as much as we speak.”
“자연은 인간에게 하나의 혀와 두 개의 귀를 주었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두 배로 들으라는 뜻이다.”
— 에픽테토스 Epictetus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말도 잘했고,
사람들 앞에서 분위기도 잘 띄웠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조금 부러웠다.
나는 뭘 하나 해도 “이 정도면 괜찮나?”
하고 몇 번씩 생각하는 편이었고,
좋은 일이 있어도 괜히 자랑처럼 들릴까 봐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달랐다.
“나 이번에 팀장한테 칭찬받았잖아.”
“이번에 산 차 진짜 잘 빠졌더라.”
“요즘 사람들이 나보고 감각 좋다고 하더라.”
처음엔 웃으며 들었다.
“오, 잘됐네.”
“좋겠다.”
“대단하네.”
진심이었다. 친구가 잘되는 게 싫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 좋은 일을 겪으면
축하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만남이 끝나고 나면 피곤했다.
카페에서 두 시간을 이야기하고 나왔는데,
내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하려고 하면
그는 금세 자기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도 예전에 그런 적 있는데,
나는 그때 이렇게 해결했어.”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그의 성공담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그가 조언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도와주려고 자기 경험을 말하는 거라고.
그런데 반복되자 알게 됐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시작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는 오랜만에 셋이 만났다. 나와 그 친구,
그리고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또 다른 친구였다.
우리는 작은 고깃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다른 친구가 말했다.
“요즘 나 이직 준비 중이야. 좀 막막하네.”
그 친구가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직은 타이밍이야. 나 봐.
나는 전에 회사 나올 때
진짜 과감하게 나왔거든.
그때 사람들이 다 말렸는데,
결국 지금 회사에서 연봉 훨씬 올랐잖아.”
다른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부럽다.”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결단력이 있어야 돼.
솔직히 말하면 능력 있는 사람은
어디 가도 살아남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옆 친구의 표정을 봤다.
그 친구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이 조금 흐려졌다.
막막하다고 말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너도 할 수 있어”였을까.
아니면 “나는 잘했어”였을까.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그 친구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실제로 이룬 것도 많았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성취를 말할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자랑은 사실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말하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가까운 사람에게 축하받고 싶다.
나도 그 마음을 안다.
하지만 자랑이 대화의 전부가 되면,
듣는 사람은 어느 순간 관객이 된다.
친구가 아니라 손뼉 치는 사람이 된다.
그게 힘들었다.
며칠 뒤,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이번 주말에 시간 돼?
차 뽑은 거 보여줄게.”
나는 잠시 휴대폰을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좋지”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차를 보러 가면
그는 분명 한 시간 넘게 옵션 이야기를 할 것이고,
누가 부러워했는지 말할 것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결국
다시 자기 이야기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거절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피하기만 하면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았다.
주말에 우리는 만났다.
그는 새 차 옆에 서서 환하게 웃었다.
“어때? 실물 미쳤지?”
나는 차를 둘러보며 말했다.
“좋네. 색도 잘 골랐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엔진, 옵션, 할인, 출고 대기, 주변 반응.
나는 처음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하지만 30분쯤 지나자 또 익숙한 피로가 올라왔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 앉았다.
그가 말했다.
“사실 내가 요즘 느끼는 게,
사람은 결국 자기 레벨에 맞는 걸
가져야 하는 것 같아.”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레벨?”
“응. 너무 겸손하게 살 필요 없어.
내가 이 정도는 탈 만한 사람이니까 타는 거지.”
그 말에 나는 잠시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더는 모른 척하기 어려워서
나온 웃음이었다.
그가 물었다.
“왜 웃어?”
나는 잠깐 망설였다.
이 말을 해도 될까.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닐까.
그가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관계를 끊고 싶어서가 아니라,
계속 이렇게 만나다가는 내가 먼저 마음을 닫을 것 같아서였다.
“너한테 좋은 일이 많은 건 나도 알아.”
그가 나를 봤다.
“응?”
“그리고 나도 진심으로 축하해.
차 산 것도,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도,
네가 열심히 산 결과라고 생각해.”
그는 조금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근데 가끔 너랑 이야기하면,
내가 친구로 있는 게 아니라
네 성공담을 들어주는 관객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그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그렇게 자랑을 많이 해?”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가 방어적으로 나오지 않게 말하고 싶었다.
“많이 한다기보다,
대화가 자주 그쪽으로 가.
누가 힘든 얘기를 해도
네가 어떻게 잘 해냈는지로 이어질 때가 많고.”
그는 조금 당황한 듯 웃었다.
“야, 나는 그냥 경험 얘기해 주는 거지.”
“알아. 그래서 더 말하기 조심스러웠어.
네가 나쁜 뜻으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이어 말했다.
“근데 가끔은 누가 힘들다고 말하면,
해결책이나 네 성공담보다
그냥 ‘힘들었겠다’가 먼저 필요할 때도 있더라.”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괜히 말했나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적어도 오늘은 속으로만 삼키지 않았으니까.
그가 한참 뒤에 말했다.
“나 좀 민망하네.”
나는 그를 봤다.
“사실 나도 알아. 내가 말 많다는 거.”
그는 창밖을 보며 덧붙였다.
“근데 이상하게 잘된 얘기를 안 하면
사람들이 나를 별거 아닌 사람으로 볼 것
같을 때가 있어.”
그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의 자랑 뒤에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자신감 있어 보였고,
늘 여유 있어 보였다.
그런데 어쩌면 그는 자신을 크게 말해야만
작아지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너 별거 아닌 사람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가 나를 봤다.
“꼭 뭘 보여줘야만
괜찮은 사람인 건 아니잖아.”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말 들으니까 더 민망하다.”
“민망해도 들어.”
그가 처음으로 크게 말하지 않고 웃었다.
그날 이후
그 친구가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자기 이야기를 좋아했고,
가끔은 대화가 또 자랑처럼 흘렀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점은 있었다.
내가 말을 시작하면 그는
중간에 멈추는 연습을 했다.
“아, 미안. 네 얘기 계속해.”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나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무조건 참고 웃어주지 않았다.
친구가 너무 길게 자기 이야기만 하면 가볍게 말했다.
“오늘은 네 시상식 아니고
우리 대화 자리야.”
그러면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아, 또 시작했냐?”
“응. 트로피 내려놔.”
우리 사이에는 그런 농담이 생겼다.
나는 그때 알았다.
자랑이 심한 친구를 대하는 방법은
무조건 칭찬하거나, 무조건 피하거나,
뒤에서 험담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선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그 선은 공격이 아니라 설명이어야 한다.
“너 왜 그렇게 자랑만 해?”가 아니라,
“네 이야기도 좋은데,
내 이야기도 들어줬으면 좋겠어.”
“넌 늘 네 얘기만 하잖아”가 아니라,
“가끔 나는 대화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들어.”
사람은 정면으로 비난받으면 방어한다.
하지만 자기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았는지 들으면,
생각할 틈이 생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어떤 친구는 끝까지 자신만 말하고,
남의 감정을 들으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
관계는 이해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살피려는 태도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 친구와 나는 지금도 가끔 만난다.
그는 여전히 자랑을 한다.
“나 이번에 또 좋은 일 생겼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말한다.
“좋아. 10분 줄게. 그다음은 내 차례야.”
그는 손목시계를 보는 척하며 말한다.
“오케이. 핵심만 간다.”
물론 핵심만 가진 않는다.
그래도 이제 나는 예전처럼 지치지 않는다.
그가 자랑을 시작하면
속으로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그의 성취가
내 부족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친구의 자랑이 듣기 힘든 이유는
그 친구가 잘돼서만은 아니다.
그 자랑 속에서 내 이야기가 사라지고,
내 삶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친구를 끌어내리는 마음이 아니다.
내 자리를 지키는 말이다.
좋은 친구란 늘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자랑한 뒤에도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관계란
한 사람이 계속 빛나는 무대가 아니라,
서로가 번갈아 조명을 받을 수 있는 자리다.
“Friendship is born at that moment when one man says to another, ‘What! You too?’”
“우정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너도 그래?’라고 말하는 순간 태어난다.”
— C. S. 루이스, 『네 가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