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도덕형이상학 정초》, 1785

당신은 철로 옆에 서 있다.
그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전차가 향하는 선로 앞에는 다섯 사람이 있다.
그들은 전차가 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당신 앞에는 레버 하나가 있다.
레버를 당기면 전차의 방향을 다른 선로로 바꿀 수 있다.
문제는 그 선로에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섯 사람이 죽는다.
레버를 당기면 한 사람이 죽고 다섯 사람이 살아남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한 명보다 다섯 명을 살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숫자로만 보면 간단하다.
한 명이 죽는 것보다 다섯 명이 죽는 피해가 크다.
따라서 한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다섯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트롤리 딜레마’다.
이 사고실험의 출발점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은 영국 철학자 필리파 풋이다.
그녀는 1960년대 도덕철학을 논하면서 비슷한 전차 상황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순한 숫자 계산이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을 직접 희생시키는 행동과, 아무것도 하지 않아 여러 사람이 죽게 두는 것은 도덕적으로 같은가?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번에는 상황을 조금 바꿔보자.
당신은 철로 위 육교에 서 있다.
전차는 다시 다섯 명을 향해 달려간다.
이번에는 레버가 없다.
그런데 당신 앞에는 덩치가 큰 사람이 한 명 서 있다.
그 사람을 철로 아래로 밀면 전차를 멈출 수 있다.
그러면 다섯 명은 살아남는다.
대신 당신이 민 한 사람은 죽는다.
결과만 보면 앞의 문제와 같다.
한 명이 죽고 다섯 명이 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은 이 상황에서 훨씬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레버를 당기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람을 직접 밀어 죽이는 것은 못 하겠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결과는 같은데 우리의 판단은 달라진다.
여기에서 트롤리 딜레마의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결과만으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게 보는가.
다섯 명을 살렸다는 사실만 중요하다면 두 행동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해 다른 사람을 살렸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람을 밀어 전차를 멈추는 경우에는 그 사람의 죽음 자체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한 수단이 된다.
반면 레버를 당기는 경우에는 선로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고, 한 사람의 죽음은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이 문제를 논쟁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일까.

당신은 레버를 당기면 다섯 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다섯 명이 죽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인 것은 아니잖아.”
하지만 살릴 수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행동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일상과도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병원에 중환자가 여러 명 있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장비가 하나뿐이라면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할까.
재난 현장에서 구조대가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면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할까.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행자와 운전자 중 누구의 피해를 줄이도록 설계해야 할까.
현실에서는 전차의 레버처럼 단순하게 선택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우리의 판단은 쉽게 흔들린다.
예를 들어 선로 위 한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어떨까.
다섯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내 자녀라면?
반대로 한 사람은 범죄자이고 다섯 사람은 어린이라면?
숫자는 그대로인데 우리의 마음은 갑자기 달라질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할 때 항상 숫자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트롤리 딜레마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한 명보다 다섯 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도 죄 없는 사람을 직접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두 생각 모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트롤리 딜레마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정답을 맞혀보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가?
결과가 좋은 행동이라면 과정은 어느 정도 용서될 수 있는가.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한 사람의 희생을 선택해도 되는가.
내가 직접 해를 끼치는 것과, 해가 일어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한 명이라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아마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트롤리 딜레마는 수십 년이 지나도 계속 이야기된다.
철로 위에 있는 것은 결국 다섯 명과 한 명만이 아니다.
그곳에는 우리의 양심과 책임, 원칙과 감정도 함께 놓여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레버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쩌면 다른 사람의 생명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기준으로 살아갈 것인지까지 함께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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