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겨울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회사 회식 자리였어요.
솔직히 첫인상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말도 많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스타일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눈이 갔어요.
다른 사람들은 취한 분위기에 떠들고 웃고 있었는데,
그 사람만 조용히 구석에서 물을 따라주고,
늦게 오는 직원 자리 챙겨주고,
대화에서 소외된 사람한테 자연스럽게 말을 걸더라고요.
그날 회식이 끝나고 집 방향이 같아서 같이 지하철을 탔습니다.
“오늘 힘드셨죠?”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어요.
그냥 평범한 한마디였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날 따라 유난히 힘들었거든요.
저는 괜히 웃으면서 말했어요.
“티 났어요?”
그 사람이 웃더라고요.
“조금요.”
그날 이후 우리는 자주 마주쳤어요.
점심도 같이 먹고, 야근하면 편의점 커피도 같이 마시고,
퇴근길도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그 사람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됐어요.
그 사람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 없는 직원 챙기고,
누가 힘들어 보이면 먼저 다가가고,
제가 무심코 했던 말도 기억해주는 사람이었어요.
한 번은 제가 야근하다가 혼자 울었던 적이 있어요.
일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화장실에서 겨우 감정 정리하고 나왔는데 책상 위에 초콜릿 하나가 놓여 있더라고요.
메모도 없었어요.
근데 누가 놓고 갔는지 바로 알겠더라고요.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생색내지 않고 조용히 챙겨주는 사람.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람에게는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사내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도 있었고,
가끔 통화하는 모습도 봤어요.
그래서 애써 선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괜히 착각하지 말자.”
수십 번도 더 다짐했어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나요.
그 사람도 저에게 마음이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제가 혼자 오해했던 걸까요.
야근 끝나고 둘이 늦은 저녁 먹던 날도 있었고,
제가 아프다고 하면 약 사 들고 집 앞까지 와준 적도 있었어요.
한 번은 제가 농담처럼 물었어요.
“원래 다 이렇게 잘 챙겨주세요?”
그러자 그 사람이 한참 말이 없더니 조용히 말했어요.
“…아니요.”
그 한마디에 심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더 가까워졌어요.
연락도 많아졌고, 출근 전에 “오늘도 힘내요”라는 메시지가 오는 게 당연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절대 선을 넘지는 않았어요.
손 한 번 잡지 않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요.
대신 더 헷갈리는 행동만 했습니다.
제가 힘들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주는 사람도 그 사람이었고,
좋은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사람도 그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여자친구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웃더라고요.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그래서 결국 물어봤어요.
“저… 오빠한테 어떤 사람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아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데도 듣고 싶었던 거겠죠.
그 사람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리고 어렵게 말했습니다.
“나쁜 사람 되기 싫었어.”
그 말을 듣는데 모든 게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좋아한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는 말.
그 애매한 대답이 오히려 더 잔인했어요.
저는 울면서 말했어요.
“그럼 왜 이렇게 잘해줬어요…”
그 사람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하더라고요.
“네가 힘들어 보였어.”
“그럼 여기까지 오면 안 됐잖아요.”
“…알아.”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 멀어졌습니다.
연락도 줄었고, 퇴근도 일부러 따로 했어요.
그런데 웃긴 건요.
끝났는데 끝난 게 아니더라고요.
회사에서 매일 얼굴을 보니까 더 힘들었어요.
아무 일 없는 척 인사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 보는 것도.
특히 여자친구 이야기할 때마다 숨이 막혔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리고 정말 마지막 출근 날, 퇴근 전에 저를 따로 부르더라고요.
회사 근처 작은 카페였습니다.
우리는 한참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했어.”
저는 웃었어요.
근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만 하네요.”
그 사람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아주 작게 말했어요.
“…많이 좋아했어.”
그 순간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차라리 듣지 말 걸 그랬어요.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고.
왜 끝나는 순간에야 그런 말을 하냐고.
저는 울면서 물었어요.
“근데 왜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 사람은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봤어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다치게 될 것 같았어.”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날 우리는 제대로 작별도 못 했어요.
그 사람은 떠났고, 저는 회사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어요.
신기하게도 사람은 살아지더라고요.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일도 하고.
그런데 아직도 비 오는 날 퇴근길이면 그 사람이 생각나요.
편의점 커피 냄새만 맡아도 그때 기억이 나고,
야근하다 혼자 남아 있으면 괜히 핸드폰을 보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그 사람 SNS를 봤어요.
여자친구와 여전히 잘 만나고 있더라고요.
사진 속 그 사람은 행복해 보였어요.
근데 저는 아직도 그 겨울에서 못 나온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이 정말 저를 좋아했던 걸까요?
아니면 외로운 순간 잠깐 흔들렸던 걸까요.
그리고 만약 정말 서로 좋아했던 게 맞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저는 아직도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게 더 괴로워요.
이제는 놓아야 하는 걸 아는데,
끝난 관계인데도 마음은 자꾸 그 자리에 멈춰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왜 저는 아직도 그 사람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요.
정말 사랑이었다면 놓아주는 게 맞는 걸까요.
아니면 한 번쯤은 제 마음을 끝까지 붙잡아봤어야 했던 걸까요.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26.05.12 - [연애심리/연애사연] - 사랑했지만 이어질 수 없었던 관계
사랑했지만 이어질 수 없었던 관계
스물아홉 겨울이었습니다.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회사 회식 자리였어요.솔직히 첫인상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말도 많지 않았고,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스타일도 아니었거든요.그런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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