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했어요.
“걔 진짜 별로야.”
“너 또 상처받는다.”
“왜 하필 그런 애를 좋아해?”
근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더라고요.
좋아하면 안 된다는 걸 알수록 더 신경 쓰였어요.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더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을 처음 본 건 친구 소개 술자리였어요.
늦게 들어온 그는 자연스럽게 사람들 시선을 가져갔습니다.
딱히 화려한 스타일도 아니고, 엄청 잘생긴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있었어요.
무심한 표정.
낮게 깔린 목소리.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말투.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제 쪽을 힐끗 보더니 웃으며 말했어요.
“처음 보는 얼굴이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그날 이후 우린 자연스럽게 연락하게 됐어요.
근데 그 사람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연락하다가도, 갑자기 사라졌어요.
새벽까지 전화하면서 웃다가도 다음 날이면 읽씹이었습니다.
제가 서운하다고 하면 늘 똑같이 말했어요.
“원래 연락 잘 안 봐.”
근데 웃긴 건요.
제가 진짜 포기하려고 하면 꼭 다시 나타났습니다.
“뭐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내오는 짧은 메시지 하나.
그거 하나에 저는 또 무너졌어요.
친구들은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걔 너 가지고 노는 거야.”
“좋아하면 저렇게 안 해.”
근데 저는 자꾸 그 사람 편을 들게 되더라고요.
“원래 표현이 서툰 사람이야.”
“그래도 힘들 때는 내 옆에 있어줘.”
“진짜 나쁜 사람은 아니야.”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미 시작됐던 것 같아요.
합리화.
그 사람은 절 절대 여자친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행동은 늘 애매했어요.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제 옆에 앉았고,
제가 취하면 집까지 데려다줬고,
아프다고 하면 약을 사다 줬어요.
딱 기대하게 만들 만큼만 잘해줬습니다.
그래서 더 잔인했어요.
한 번은 용기 내서 물어봤습니다.
“우리 무슨 사이야?”
그 사람은 잠깐 절 바라보더니 웃었어요.
“그런 거 꼭 정해야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근데 더 비참한 건요.
그 말을 듣고도 저는 떠나지 못했다는 거예요.
오히려 혼자 계속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래도 싫다는 건 아니잖아.’
‘시간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더라고요.
그 사람이 다른 여자들과 연락하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SNS에 여자 흔적이 보여도 애써 외면했습니다.
근데 또 그 사람이 한 번 다정하게 굴면 모든 게 괜찮아졌어요.
한 번은 회사에서 너무 힘든 날이 있었어요.
혼자 술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그 사람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야?”
저는 괜히 차갑게 말했어요.
“왜.”
"데리러 갈게.”
그 말 한마디에 울컥했습니다.
그 사람은 늘 그런 식이었어요.
제가 진짜 포기하려는 순간이면 꼭 나타났습니다.
그날도 말없이 제 옆에 앉아서 해장국 먹여주고 집까지 데려다줬어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잘해줘?”
그 사람은 절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었어요.
“좋아하니까.”
그 말 듣는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근데 이어진 말이 더 잔인했어요.
“근데 연애는 못 해.”
심장이 그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겨우 웃으면서 물었어요.
“왜?”
그 사람은 벽에 기대서 한숨 쉬듯 말했습니다.
“난 원래 오래 못 가.”
“해보지도 않았잖아.”
“너 나 만나면 힘들어.”
그 말을 듣는데 화가 나기보다 슬펐어요.
마치 처음부터 끝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거든요.
근데 저는 또 바보처럼 말했습니다.
“괜찮아.”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았어요.
답장 하나에 하루 기분이 달라졌고,
연락 없는 날이면 혼자 핸드폰만 들여다봤고,
SNS 접속 시간 보면서 의미 부여하다 울기도 했습니다.
근데도 못 놨어요.
왜냐면 그 사람이 가끔 보여주는 다정함이 너무 진짜 같았거든요.
저는 그 사람이 사실은 상처 많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가 끝까지 사랑해주면 변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착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나한텐 다를 거야.”
근데 아니더라고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무너진 건 친구 말 한마디 때문이었어요.
“근데 걔 원래 여자들한테 다 그래.”
처음엔 안 믿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우연히 봤어요.
그 사람이 다른 여자와 웃고 있는 모습을.
문제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그 여자에게 짓는 표정이 너무 익숙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그 눈빛.
제가 설렜던 그 말투.
순간 모든 게 무너졌어요.
그 사람은 저한테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던 겁니다.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누구에게나 여지를 줬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더 비참한 건요.
그걸 알고도 아직 좋아했다는 거예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자존심은 다 무너졌는데 마음은 안 끝났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나 한 번이라도 진심이긴 했어?”
그 사람은 한참 대답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진심이었지.”
“근데 왜 이렇게 했어?”
그 사람은 힘없이 웃었습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안 나더라고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근데 저는 그런 사람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거고요.
우리는 결국 그렇게 끝났습니다.
연락도 끊겼고, 서로의 일상에서도 사라졌어요.
근데 아직도 가끔 생각납니다.
새벽에 아무렇지 않게 걸려오던 전화.
무심하게 챙겨주던 순간들.
아무 의미 없는 말인데 괜히 설렜던 대화들.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왜 그렇게 나쁜 남자를 좋아했냐고.”
근데요.
그 사람은 모든 순간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가끔, 정말 숨 막히게 다정했어요.
그래서 더 못 놓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궁금합니다.
그 사람을 정말 사랑했던 걸까요.
아니면 사랑받고 싶었던 제 결핍이 그 사람에게 집착하게 만든 걸까요.
그리고 사람은 정말…
사랑만으로 변할 수 있는 걸까요.
2026.05.13 - [연애심리/연애사연] - 나쁜 남자를 좋아했던 이유 | 상처받는 걸 알면서도 못 놓은 짝사랑 이야기
나쁜 남자를 좋아했던 이유 | 상처받는 걸 알면서도 못 놓은 짝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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