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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심리/연애사연

그의 하루에는 내가 없었고, 그의 외로움에는 내가 있었다

by 다윗의장막 2026.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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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만 찾더니, 떠날 때는 붙잡더라

 

처음에는 그가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는 늘 일이 많았다.

회의가 많았고,

약속이 많았고,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미안, 오늘 정신이 없었어.”

 

그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늘 괜찮다고 했다.

 

“괜찮아. 바쁠 수 있지.”

 

사랑하면 기다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재촉하기보다 이해해 주는 게 맞다고 믿었다.

나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었다.

상대를 압박하지 않는 사람.
부담 주지 않는 사람.
어른스럽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연락이 늦어도 참았다.
약속이 취소돼도 웃었다.
내가 먼저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도 삼켰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만나면 다정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기억했다.
걷다가 차가 오면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감싸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런 작은 행동들이 나를 붙잡았다.

 

‘그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겠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의 다정함은 늘 그가 원할 때만 도착했다.

그가 외로울 때.
그가 힘들 때.
그가 술을 마신 밤.
그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날.
그가 문득 내 생각이 났다고 말하는 새벽.

그럴 때 그는 나를 찾았다.

 

“자?”

 

짧은 메시지 하나.

나는 자고 있다가도 눈을 떴다.

 

“아니, 왜?”

 

“그냥.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그 말이 처음에는 좋았다.

누군가가 잠들기 전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메시지는 이상하게 쓸쓸해졌다.

 

그가 나를 찾는 시간은 대부분 밤이었다.
밝은 낮에는 바쁘다던 사람이,

유난히 외로운 밤이면 나를 떠올렸다.

 

나는 그의 하루에는 없고,

그의 허전함 속에만 있는 사람 같았다.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너희는 주말에 자주 만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정해진 데이트가 거의 없었다.

그가 시간이 나면 만났다.
그가 갑자기 보고 싶다고 하면 만났다.
그가 일이 취소됐다고 하면 만났다.

나는 늘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의 빈 시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 시간을 비워두는 사람.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이 약속을 잡자고 해도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혹시 그가 연락할지도 모르니까.

토요일에 영화를 보자고 할지도 모르니까.

일요일에 밥 먹자고 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는 연락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휴대폰만 보면서 주말을 흘려보냈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기다리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다림은 사랑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일이 되었다.

 

그는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바쁘다고 했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내가 오늘 좀 만나고 싶다고 하면 미안하다며 다음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힘들 때는 나는 늘 있어야 했다.

그가 전화하면 받아야 했고,
그가 만나자고 하면 나가야 했고,
그가 기대고 싶다고 하면 들어줘야 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점점 나는 그의 연인이 아니라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좋은 날의 그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했고,
힘든 날의 그는 나에게 왔다.

 

나는 그의 행복에는 초대받지 못하고,
그의 외로움만 떠안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내가 정말 힘든 날이 있었다.

회사에서 큰 실수를 했다.
상사에게 혼났고, 집에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몰래 울었다.

그날만큼은 그에게 기대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너무 힘들었어. 잠깐 통화할 수 있어?”

 

한참 뒤 답장이 왔다.

 

“지금 친구들이랑 있어서. 나중에 전화할게.”

 

나는 괜찮다고 했다.

늘 그랬듯이.

하지만 그날 밤 그는 전화하지 않았다.

새벽 1시쯤 SNS에 사진이 올라왔다.

친구들과 웃고 있는 그의 얼굴.
맥주잔.
환한 조명.
즐거워 보이는 표정.

나는 그 사진을 보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알았다.

그는 바쁜 게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쓸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나에게 쓰고 싶은 시간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필요할 때.

 

그 순간에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좋아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늘 변명부터 찾게 된다.

 

‘요즘 일이 힘들어서 그래.’

‘원래 표현이 서툰 사람이야.’

‘그래도 만나면 잘해주잖아.’

‘내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어.’

 

나는 그의 부족한 애정을 이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사랑은 한 사람만 이해한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그는 또 새벽에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나 오늘 좀 힘들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물었을 것이다.

 

“무슨 일 있어?”

 

그런데 그날 나는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조용히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는 계속 말했다.

 

“그냥 아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화가 났다.

나는 늘 네 편이었는데.
너는 내 편이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니.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가 잠시 조용해졌다.

 

“응?”

“나는 네 편 아니었어?”

 

그는 당황한 듯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말을 끊었다.

 

“너는 힘들 때마다 나를 찾았어.

그런데 내가 힘들 때는 너 없었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울지 않고 말했다.

 

“나는 네가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사람이 아닌데.”

 

전화기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내가 그렇게 느꼈는지 몰랐다고.

 

그 말도 아팠다.

 

몰랐다는 말.

 

나는 이렇게 오래 힘들었는데,

그는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았던 걸까.

 

며칠 동안 그는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침에 먼저 연락했고,

점심도 챙겼고,

퇴근 후 통화도 했다.

나는 다시 기대했다.

사람이 변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

 

정확히 일주일이었다.

그는 다시 바빠졌고,

연락은 줄었고,

약속은 미뤄졌다.

 

그리고 어느 새벽,

또 메시지가 왔다.

 

“자?”

 

나는 그 메시지를 한참 바라봤다.

예전의 나였다면 바로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답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아침이 되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왜 답 안 했어?”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걱정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그는 내가 항상 받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자고 있었어.”

“원래 너는 늦게까지 깨 있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깨웠다.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춰진 내 모습만 알고 있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면서 나를 너무 많이 바꿨다.

기다리는 사람으로.
참는 사람으로.
괜찮은 척하는 사람으로.
언제든 받아주는 사람으로.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나도 먼저 연락받고 싶었다.
나도 힘들 때 기대고 싶었다.
나도 그의 하루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고 싶었다.

 

어느 주말,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나는 오래 고민한 말을 꺼냈다.

 

“우리 관계가 나한테 너무 외로워.”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그렇게 못해줬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너를 편하게 생각해서 그랬어.”

 

나는 조용히 웃었다.

 

“나는 편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야.”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네가 힘들 때 나를 찾는 건 괜찮아.

그런데 나도 힘들 때 네가 있어야 하잖아.

그게 연애잖아.”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이번에도.

하지만 나는 이제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과는 시작일 수 있지만,

변화가 없으면 반복되는 예고편일 뿐이었다.

나는 그를 아직 좋아했다.

그게 가장 힘들었다.

마음이 완전히 식었다면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웃음이 좋았고,

그의 목소리에 흔들렸고,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더 아팠다.

사랑하는데 지쳐간다는 건 이런 것이었다.

떠나기엔 아직 마음이 남아 있고,
머물기엔 내가 너무 많이 닳아 있었다.

 

나는 말했다.

 

“나 이제 기다리는 거 그만하고 싶어.”

 

그가 나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나는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만지며 대답했다.

 

“네가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이 아니라,

너의 평범한 하루에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는 고개를 숙였다.

 

“노력할게.”

 

그 말에 예전 같으면 다시 붙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달랐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날 헤어졌다.

큰 싸움은 없었다.
소리 지르는 일도 없었다.
누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더 이상 그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힘들었다.

휴대폰이 조용하면 이상했다.
그가 새벽에 연락할 것 같아 자꾸 화면을 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평온이 찾아왔다.

 

주말에 친구를 만났다.
보고 싶던 영화를 봤다.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허전했다.

그러다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도 외로웠다.

그게 가장 슬픈 진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외로운 것보다,

혼자 외로운 게 차라리 덜 아프다는 것을 나는 늦게 배웠다.

지금도 가끔 그가 생각난다.

좋았던 순간도 분명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누군가가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날에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바쁜 사람도 사랑하면 시간을 낸다.

표현이 서툰 사람도 소중하면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정말 나를 아끼는 사람은

내가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필요했던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그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를 더 잃고 싶지 않아서.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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