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이것만은 명심하라.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1막 3장

나는 예전부터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좋게 말하면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었고 다르게 말하면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누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 일단 한 번은 생각했다.
“머리 짧게 자르는 게 더 낫겠다.”
그러면 거울을 봤다.
“그 옷은 너랑 안 어울려.”
그러면 다음부터 잘 입지 않았다.
“그 회사 계속 다녀도 괜찮겠어?”
그러면 멀쩡히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불안해 보였다.
“너 이제 결혼 생각해야 하지 않아?”
그러면 잘 지내다가도 내가 뭔가 늦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신경 써주니까 말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말도 있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알려준 적도 있었고 누군가의 경험 덕분에 실수를 피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의 충고를 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좋은 마음으로 해주는 말을 무시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나에게 점점 더 많은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내 생각보다 남의 생각을 먼저 확인하게 됐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사회생활 경험도 많았다.
처음에는 그 사람에게 고민을 자주 털어놓았다.
회사 이야기를 하면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고 연애가 힘들다고 하면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말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을 꽤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언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다.
“너 머리색 바꾸는 게 좋겠다.”
나는 물었다.
“왜?”
“지금 색은 너한테 좀 답답해 보여.”
나는 그날 집에 가서 한참 거울을 봤다.
전날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며칠 뒤 머리색을 바꿨다.
반응은 좋았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역시 그 사람 말이 맞나 싶었다.
그다음은 옷이었다.
“그 치마는 너랑 좀 안 어울린다.”

나는 또 물었다.
“그래?”
“응. 너는 좀 더 단정하게 입는 게 나아.”
나는 다음 약속 때 그 치마를 입지 않았다.
별일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옷장을 열어놓고 있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 옷은 내가 싫어서 안 입는 걸까.
아니면 누가 별로라고 해서 안 입는 걸까.
그 생각이 처음으로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서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당시 나는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회사가 못 견딜 만큼 싫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다닐 자신도 없었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고 조건이 나은 곳이 있다면 한번 알아보고 싶었다.
몇 달 동안 혼자 생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그 지인에게 말했다.
“나 요즘 이직 좀 알아볼까 해.”
그 사람은 바로 말했다.
“하지 마.”
나는 조금 놀랐다.
“왜?”
“지금 같은 때에 옮기는 건 위험하지.”
“아직 옮긴다는 건 아니고 그냥 알아보려고.”
“너는 가끔 너무 충동적이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 이직 사이트를 열었다가 닫았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
내가 정말 충동적인 사람인가 싶었다.
몇 달 동안 생각한 것도 충동적인 걸까.
그 사람 말대로 괜히 일을 벌이려는 건 아닐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화가 났다.
그 사람이 나한테 강제로 무엇을 시킨 것도 아니었다.
결국 사이트를 닫은 것은 나였다.
그런데 왜 나는 내 생각보다 그 사람의 확신을 더 믿었을까.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건 조언이 아니라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또 바로 마음이 약해졌다.
나 걱정돼서 그런 거겠지.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겠지.
실제로 나를 아끼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더 어려웠다.
싫은 사람이 참견하면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내 삶에 너무 깊이 들어오면 어디까지가 관심이고 어디서부터가 간섭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가족도 비슷했다.
엄마는 늘 나를 걱정했다.
늦게 들어가면 위험하다고 했고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왜 굳이 혼자 가냐고 했다.
돈을 쓰면 아껴야 한다고 했고 회사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이번에는 버티라고 했다.
어느 날 나는 웃으며 물었다.
“엄마, 나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돼?”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예전의 나라면 그 말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래. 엄마가 나 걱정해서 그러는 거지.’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엄마.”
“왜?”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어도 내가 힘들 수는 있어.”
엄마가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야?”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나는 이런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괜히 엄마를 서운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말을 이어갔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내가 알아서 해보고 싶은 것도 있어.”
엄마 표정이 바로 굳었다.
“이제 엄마 말이 잔소리라는 거네?”
나는 순간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항상 그랬다.
상대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 내가 너무 심했나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잠깐 멈추었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잔소리라고 한 게 아니라 내가 결정해보고 싶다는 말이야.”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괜히 말했나 싶었다.
그냥 참을 걸.
엄마도 나 걱정돼서 그런 건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무서웠지만 조금 후련했다.
처음으로 내 마음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엄마가 전화했다.
“요즘 회사는 어때?”
나는 말했다.
“그냥 좀 힘들어.”
예전 같으면 바로 말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만둬라.
버텨라.
다른 회사 알아봐라.
그런데 엄마는 잠깐 있다가 말했다.
“그래. 힘들면 얘기해.”
나는 그때 조금 알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관심을 끊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나 대신 답을 정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이다.
그 뒤로 사람들의 말을 듣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누가 조언하면 먼저 생각했다.
‘저 사람이 맞을 수도 있지.’
이제는 그전에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지?’
그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먼저 보느라
정작 내 생각을 뒤늦게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일도 그 무렵 있었다.
친한 친구 한 명은 내 연애에 관심이 많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사진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결혼 생각은 있는지 하나씩 물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친구끼리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만나던 사람과 작은 다툼이 있었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냥 답답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는 끝까지 듣기도 전에 말했다.
“헤어져.”
나는 웃었다.
“그 정도 아니야.”
친구는 단호했다.
“아니야. 그런 사람은 나중에 더 심해져.”
나는 설명하려 했다.
“근데 그게…”
친구가 말을 끊었다.
“내가 너라면 진작 끝냈어.”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짜증이 났다.
나는 말했다.
“근데 네가 내가 아니잖아.”
친구가 멈췄다.
나도 놀랐다.
예전의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는 잠시 있다가 말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
예전 같으면 나는 또 바로 물러났을 것이다.
‘내가 너무 세게 말했나.’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말했다.
“예민한 게 아니라 오늘은 헤어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야.”
친구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처음으로 조금 더 분명하게 말했다.
“그냥 들어줬으면 했어.”
그날 분위기는 조금 어색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 예전처럼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친구가 기분 나쁠 수는 있었다.
그래도 내가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한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했다.
그냥 듣기를 원하는지.
조언이 필요한지.
해결 방법을 같이 찾고 싶은지.
그리고 필요하면 먼저 말했다.
“오늘은 그냥 들어줘.”
처음에는 그 한마디도 어색했다.
그런데 해보니 대화가 훨씬 편했다.
반대로 누군가 내게 고민을 말할 때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나 역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다.
친구가 회사를 힘들어하면
“그럼 그만둬.”
연애가 힘들다고 하면
“그 사람 만나지 마.”
돈 때문에 고민하면
“그렇게 쓰면 안 되지.”
나도 꽤 많이 말했다.
그 순간에는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가 회사 문제를 이야기할 때 습관처럼 조언하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물었다.
“내가 그냥 들어줄까, 아니면 같이 방법 생각해 볼까?”
친구가 바로 말했다.
“그냥 들어줘.”
나는 그날 정말 아무 조언도 하지 않았다.
친구는 한참 이야기한 뒤 말했다.
“얘기하니까 좀 낫다.”
그 말을 듣는데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그동안 도와주는 것과 대신 판단하는 것을 헷갈렸던 것 같았다.
그 이후부터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도 달라졌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이 말이 나오려 하면 한 번 멈췄다.
내가 겪은 것은 내 인생이었다.
비슷해 보여도 상대의 상황은 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에게도 예전처럼 참거나 폭발하는 두 가지 방식만 쓰지 않게 됐다.
나는 중간을 배웠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마워. 근데 이건 내가 생각해 볼게.”
“그건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아.”
“오늘은 조언보다 내 얘기만 들어주면 좋겠어.”
“그 부분은 내가 결정할게.”
이런 말을 처음 할 때는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상대의 얼굴부터 살폈다.
혹시 기분 나빴나.
혹시 나를 차갑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몇 번 반복하자 조금씩 달라졌다.
상대가 서운해한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한 번은 누군가 말했다.
“이제 내 말은 필요 없다는 거네?”
예전의 나라면 바로 달랬을 것이다.
이번에는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필요할 때 내가 먼저 물어볼게.”
그 말을 하고 상대를 바라봤다.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예전에는 거절한 뒤에도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 설명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제는 조금 안다.
거절은 토론이 아니다.
상대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내 기준을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 변화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자기 생각을 끝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계속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모든 말을 마음속까지 들여놓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거기까지만 듣는다.
내 삶에 적용할지는 내가 결정한다.
얼마 전 그 오래된 지인을 다시 만났다.
내가 아직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듣더니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거봐. 내가 그때 옮기지 말랬지? 내 말 듣길 잘했잖아.”
예전 같았으면 웃으며 맞다고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안 옮긴 건 내가 결정한 거야.”
그 사람이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덧붙였다.
“네 말도 참고는 했어. 근데 결정은 내가 했지.”
잠깐 조용해졌다.
예전의 나라면 그 침묵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괜히 분위기를 풀려고 다른 말을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냥 있었다.
잠시 뒤 그 사람이 말했다.
“그래. 그건 그렇지.”
끝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의견을 거절하면 그 사람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충고도 듣고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도 답하고 내가 결정하고 싶은 일까지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안다.
사람을 좋아해도 그 사람의 모든 말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고마운 관심도 거절할 수 있고 걱정의 방식도 바꿔달라고 말할 수 있다.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관계가 반드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계속 만날 수 있는 관계도 있다.
요즘도 누군가는 내게 말한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예전에는 그 말만 들으면 내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르다.
잘되라고 하는 말인지 알겠다.
걱정하는 마음도 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에는 선을 그을 수 있다.
좋은 의도와 불편한 결과는 같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사람들의 말을 예전보다 덜 무겁게 들고 다닌다.
좋은 말은 가져간다.
필요한 충고는 생각해 본다.
나와 맞지 않는 말은 그 사람의 생각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예전보다 먼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예전에는 이 질문보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가 먼저였다.
지금은 순서가 바뀌었다.
그 변화가 나는 마음에 든다.
내가 모든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조언을 더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됐다.
듣는 것과 따르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말하기 전에 가능하면 먼저 묻는다.
“내 생각도 말해도 돼?”
그 질문 하나를 배우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마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는 참견하는 사람이고 또 누군가 앞에서는 참견 때문에 지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관심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관심에도 경계가 있다는 것을 배우는 일인지 모른다.
예전의 나는 사람들의 말속에서 내 답을 찾으려고 했다.
지금의 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은 뒤 내 답을 내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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