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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간관계사연

명절마다 반복된 그 말 “너 잘되라고”

by 다윗의장막 2026.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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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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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절이 가까워지면 달력부터 보게 된다.

이번에는 며칠을 쉬는지

언제 내려가야 하는지

몇 시쯤 도착하면 되는지.

남들에게는 연휴 계획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마음의 준비에 가까웠다.

 

심리학개론



가족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도 보고 싶었고 오랜만에 먹는 집밥도 좋았다.

어릴 때 사촌들과 뛰어놀던 기억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명절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아마 내가 서른을 넘기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전까지 친척들은 내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물었다.

취업을 하고 나니 질문이 달라졌다.

“회사 아직 거기 다녀?”

“연봉은 많이 올랐어?”

“승진은 언제 해?”

그리고 결혼 적령기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뒤로는 거의 정해진 질문이 생겼다.

 

심리학개론



“만나는 사람은 없어?”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너무 늦는 거 아니니?”

처음에는 그냥 웃었다.

명절에 몇 번 듣는 말쯤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니 할 말이 없어서 그러겠거니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질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교가 따라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축하한다고 해야 할지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결국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이었다.

“그러게요.”

그 한마디면 대화가 빨리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끝나지 않았다.

“너도 이제 생각해야지.”

“사람은 때가 있는 거야.”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니야?”

나는 웃었다.

표정만 보면 아무렇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

사실 나도 내가 왜 그렇게 불편한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틀린 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도 미래가 걱정됐다.

회사 생활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었고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돈도 더 모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혼자 고민할 때와 다른 사람 입에서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느낌이 달랐다.

혼자 생각할 때는 내 삶의 고민이었다.

친척들에게 들으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검사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해 명절이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많이 모였다.

거실에는 과일과 전이 놓여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이 나왔다.

사촌 한 명이 최근에 집을 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런데 큰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바라보았다.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큰어머니의 말을 들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장난처럼 말했다.

“열심히 사는 것하고 결과가 나오는 건 다르지.”

농담처럼 한 말이었다.

말한 사람도 아마 나를 상처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그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었는데 누군가와 비교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갑자기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 명절부터 나는 조금씩 늦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실은 가능한 한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엄마는 서운해했다.

친척들 말 듣기 싫어서 늦게 간다고 하면 엄마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주방에 있으면 질문을 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설거지도 자주 했다.

과일을 깎으라고 하면 기꺼이 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겠다고 먼저 나서기도 했다.

어느 추석에는 결혼 이야기가 유난히 많이 나왔다.

한 친척이 내게 말했다.

“너 정도면 괜찮은데 왜 아직 혼자야?”

칭찬인지 걱정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인연이 없나 봐요.”

그러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고르면 안 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또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생활만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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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조금 화가 났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왔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내가 눈이 높거나,

이기적이거나,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나는 젓가락으로 접시에 있던 전을 잘랐다.

말을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웃었다.

명절이 끝난 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살쪘다고 난리였어.”

친구가 웃었다.

“작년에는 결혼하라더니 이번에는 살부터 빼래.”

나도 웃었다.

서로 웃고 있었지만 둘 다 조금 지쳐 있었다.

친구가 물었다.

“너는 뭐 들었어?”

나는 말했다.

“뭐, 늘 똑같지.”

그런데 그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대단한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누가 나에게 욕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늘 듣던 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왜 매번 같은 말인데 이번에는 이렇게 힘들지.

생각해 보니 상처는 한 번의 큰 말보다 작은 말들이 반복되면서 쌓이고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을 만나기도 전에 방어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엄마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명절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엄마가 전화해서 말했다.

“이번에는 일찍 와. 네 이모도 너 보고 싶대.”

나는 무심코 말했다.

“별로 안 보고 싶은데.”

엄마가 바로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순간 말이 너무 세게 나갔다는 걸 알았다.

“그 뜻이 아니라…”

“가족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그 말에 나도 감정이 올라왔다.

“가족이면 아무 말이나 해도 돼?”

엄마가 조용해졌다.

나는 그동안 참고 있던 말을 처음으로 꺼냈다.

“갈 때마다 비교하고,
결혼 안 하냐고 하고,
회사 왜 그러냐고 하고,
집은 언제 사냐고 하는데 내가 왜 가고 싶겠어?”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말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답답해졌다.

“그럼 잘되라고 하는 말이면 내가 상처받아도 괜찮아?”

엄마가 또 조용해졌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나도 내 인생 걱정해.
근데 만날 때마다 그걸 시험 보듯 물어보니까 힘들어.”

엄마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른들이 걱정해서…”

그날 통화는 좋게 끝나지 않았다.

엄마도 서운했고,

나도 서운했다.

명절에 내려가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번에는 내가 말해둘게.
너한테 결혼 이야기 하지 말라고.”

나는 그 메시지를 오래 봤다.

조금 미안했다.

엄마도 가운데에서 곤란했을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명절에 내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내 표정을 한번 살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짐을 내려놓았다.

그날 친척들이 모였다.

처음에는 평범했다.

음식 이야기.

날씨 이야기.

건강 이야기.

그러다가 예상대로 누군가 내게 물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어?”

나는 대답했다.

“그 이야기는 오늘은 안 하고 싶어요.”

순간 조용해졌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그 침묵이었다.

친척이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예전 같았으면 나도 웃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심각한 건 아니고요. 계속 들으니까 좀 피곤해서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냥 말했다.

친척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게 전부였다.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

명절이 망하지도 않았다.

나는 몇 년 동안 한마디 하면 가족 전체가 뒤집힐 것처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몇 초 어색하고 끝났다.

그날 이후 모든 질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른 친척이 물었다.

“집 살 계획은 있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계획 생기면 제가 먼저 자랑할게요.”

친척도 웃었다.

또 누군가는 말했다.

“승진해야지.”

나는 말했다.

“저희 회사에서는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심리학개론



예전의 나라면 무례하게 들릴까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말해보니 그리 큰일도 아니었다.

친척들이 모두 악의를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 세대에는 직장과 결혼과 집이 누군가의 안부를 확인하는 가장 익숙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도가 좋다고 해서 항상 듣는 사람까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명절이 다가오면 여전히 조금 긴장된다.

가족은 가까운 만큼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내가 약한 곳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말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관계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싫다고 말했을 때 조금 멈춰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번 명절에도 나는 아마 집에 갈 것이다.

여전히 조금 긴장할 것이고 어떤 질문에는 또 마음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예전처럼 무조건 웃지는 않을 생각이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에는 그렇게 말할 생각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내 삶의 모든 부분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가족 앞에서 내 인생을 증명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명절은 아직 어렵지만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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