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남편은 평소와 똑같이 출근했고, 평소와 똑같이 전화를 했다.
주말부부가 된 지도 벌써 3년째였다.
그는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나는 서울에 남았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금요일 저녁이 되어야 만날 수 있었고,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헤어져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버텼다.
매일 통화했고, 영상통화도 자주 했다.
오히려 떨어져 있으니 서로를 더 아끼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전까지는.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남편이 집에 오는 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
그러면 나는 주방에서 뛰어나가 그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문이 열렸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조용히 신발을 벗는 소리만 들렸다.
"왔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남편은 잠시 나를 보더니 웃었다.
"응."

이상했다.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표정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말투가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분명히 뭔가 달라져 있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회사 이야기를 하면 듣기는 듣는데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작은 이야기에도 질문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래?"
"힘들었겠다."
"그랬구나."
정도로 끝났다.
마치 대본을 읽는 사람 같았다.
나는 괜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애써 넘겼다.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이후부터 계속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휴대폰을 자주 보기 시작했다.
원래도 휴대폰을 안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알림이 울리지 않아도 화면을 확인했다.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잠시라도 휴대폰이 보이지 않으면 찾았다.
마치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어느 날은 화장실까지 들고 들어갔다.
나는 괜히 웃으며 말했다.
"휴대폰이랑 결혼했어?"
남편도 웃었다.
"요즘 일이 많아서."
그 말은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더 찜찜했다.
변명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리 준비한 답변처럼 들렸다.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냥 불안했다.
남편은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코를 골지도 않았고, 평소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그의 등을 바라보게 되었다.
같은 사람인데 낯설었다.
몇 주가 더 흘렀다.
이상한 점들은 계속 늘어났다.
주말에 만나면 예전보다 다정했다.
이상할 정도로.
꽃을 사 오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도 사 왔다.
결혼 8년 동안 꽃 한 송이를 사 온 적이 거의 없던 사람이었다.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좋은 거 아니야?"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다정함이 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잘해주는 느낌이 아니라 미안해서 잘해주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것도 증거는 아니었다.
전부 내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안다.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미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퇴직 후 계획도 이야기하고, 여행 이야기도 하고, 이사 이야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현재 이야기만 했다.
오늘.
이번 주.
다음 달.
그 이상은 없었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사람은 미래를 함께 꿈꾸는 사람에게서 마음이 떠나기 시작하면
미래 이야기를 줄인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남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찰이라는 말이 맞을까.
확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눈빛.
말투.
표정.
습관.
모든 것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메시지도 없었다.
의심스러운 영수증도 없었다.
전화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성실한 남편이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만약 명확한 증거가 있었다면 차라리 쉬웠을 것이다.
화를 낼 수도 있고 따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애매했다.
어느 날 영상통화를 하는데 남편 뒤로 누군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정말 잠깐이었다.
사람인지 그림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 있어?"
남편은 뒤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어?"
"방금 뒤에."
"아무도 없는데?"
그는 웃었다.
나는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성이 말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감정은 계속 속삭였다.
뭔가 있다고.
몇 달이 지나자 나는 점점 예민해졌다.
남편의 말투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답장이 늦으면 불안했다.
전화를 빨리 끊으면 의심이 들었다.
출장이라고 하면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매일 남편을 의심했다.
그리고 의심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증거도 없는데.
확인된 사실도 없는데.
나는 이미 마음속에서 재판을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잠든 남편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바라보다가 눈물이 났다.
이상했다.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슬펐다.
만약 정말 바람이 난 거라면 슬펐고.
만약 내가 괜한 의심을 하는 거라면 그것도 슬펐다.
둘 다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 내 문제는 남편의 외도가 아니었다.
확인되지도 않은 일이었다.
내 진짜 문제는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의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남편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작은 변화가 무서웠다.
그의 침묵이 무서웠고.
그의 무표정이 무서웠고.
그의 낯선 친절이 무서웠다.
지금도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남편이 정말 다른 사람이 생긴 건지.
아니면 장거리 생활이 만든 거리감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내가 불안해진 것인지.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의심은 증거보다 먼저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의심은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을 가장 먼저 갉아먹기 시작한다는 것.
나는 오늘도 금요일 저녁을 기다린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예전처럼 환하게 웃어줄까.
아니면 또 그 낯선 표정을 지을까.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보다 내 마음이 더 두렵다.
혹시 내가 이미 그를 잃어버렸다고 믿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잃어버리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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