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들을 수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볼 수 있는 언어이다." — 마크 트웨인 (Mark Twain)
매일 오후 7시
푹 젖은 솜뭉치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집 근처 수변공원으로 향하는 것이 나의 오래된 일상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 집 유기견 출신 푸들 ‘초코’의 목줄을 쥐고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초코는 낯가림이 심해 다른 강아지나 사람을 보면 멀찍이 돌아가곤 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잔디밭 한쪽으로 맹렬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초코야, 안 돼! 천천히 가!"
당황해서 리드줄을 바짝 당겼지만 초코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하얗고 커다란 리트리버 한 마리와 그 곁에 서 있는 ‘그’가 있었다.
초코는 평소 모습이 무색할 만큼 꼬리를 펠러처럼 흔들며 리트리버에게 코를 킁킁댔다.
당황한 내가 연신 사과하려던 찰나
그는 키를 낮춰 무릎을 굽히더니 초코와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요. 아이가 순하고 너무 귀여운데요? 이름이 뭐예요?"
낮고 다정한 목소리
큼직한 손으로 초코의 머리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
그게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의 반려견 이름은 ‘보리’였고 신기하게도 보리 역시 초코를 귀여워하며 둘은 순식간에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의 퇴근길 산책은 단순한 의무가 아닌 기다림이 되었다.
7시 반쯤 공원 벤치 근처에 들어서면 멀리서 보리와 함께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죠?"라는 그의 짧은 안부 인사에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곤 했다.
우리는 강아지라는 공통분모로 금세 친해졌다.
자주 가는 동물병원 이야기, 관절 영양제 추천, 애견 동반 카페 정보까지 대화 주제는 끝이 없었다.
비가 와서 산책을 못 하는 날에는 "오늘 초코는 뭐 하나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리의 졸린 사진이 날아왔다.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내 마음속에서도 그에 대한 마음이 커져갔다.
결정적인 계기는 초코가 갑자기 야간에 체해 병원에 가야 했던 날이었다.
혼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소식을 들은 그가 한걸음에 달려와 자신의 차로 24시 동물병원까지 함께 가주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새벽
피곤할 법도 한데 그는 내 손에 따뜻한 음료를 쥐여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혼자 많이 놀랐죠? 앞으로 초코한테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해요."
그날 밤, 그가 건넨 따뜻한 음료에 담긴 사람의 온도와 다정한 말 한마디는 내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게 만들었다.
얼마 후 주말
그가 근교의 예쁜 애견 동반 야외 카페로 나와 초코를 초대했다.
강아지들이 넓은 잔디밭을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때,
그가 주머니에서 작고 예쁜 텀블러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따뜻한 바닐라 라떼가 들어있었다.
"처음엔 보리랑 초코 때문에
산책 시간이 기다려지는 줄 알았는데...
... 아니었어요
이제는 초코 뒤에 서 있는 당신을 보러 나오는 시간이 내 하루 중 가장 행복해요."

그의 수줍지만 진심 어린 고백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연인이 된 우리는 지금까지도 예쁜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주말이면 두 녀석을 차 뒷좌석에 태우고 한적한 시외로 드라이브를 떠나고 저녁이면 여전히 매일 같은 공원 산책로를 함께 걷는다.
이제 초코와 보리는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의 곁을 지키고 우리 두 사람 역시 서로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었다.
강아지들이 이어준 우연한 인연은 어느덧 우리 인생에서 가장 다정하고 따뜻한 현실 로맨스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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